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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나무

[아빠 육아휴직] 행복해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엄마의 육아휴직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아빠 육아휴직은 아직 낯선 개념입니다.

 

예전보다 아빠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게 쓸 수 없는 상황이 많습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아빠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고요.

 

군대 분위기와 쪼는 문화가 있는 강압적인 환경에서 내가 속해 있는 담당에서 그동안 아빠 육아휴직을 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특히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은 승진이나 복귀 후의 입지가 위태로울 수 있는 잠재 위험을 떠안아야 합니다.

 

잠도 오지 않을 정도로 고민하며 최종 육아휴직을 결심한 것은 제목에 있듯이 행복해질 용기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에 입사한 초반에는 성공적인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떼었다고 생각하며 회사일에 전념하며 살았습니다.

 

새벽 2~3시에 퇴근하거나 밤을 새우기도 하면서 열심히 일했으나 묵묵히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했고 자기주장이 약하고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나의 성격과 군대 문화의 제조업과는 안 맞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회사의 고질적인 품질 불량에 대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였지만 엉뚱하게 다른 사람에게 공이 넘어갔고 바보같이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도 "회사가 잘되면 되는 거지"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문제 제기 없이 넘어가버렸습니다.

(그 당시 연차도 별로 안되어서 감히 얘기를 못했습니다.)

 

결국 보상을 받지 못하고 나의 업적을 가져간 사람은 우수사원으로 선정되며 승승장구하였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나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고 15년을 일하면서 스트레스로 만성설사를 하고 아플 때 병원도 잘 안 가서 만성비염이 생겼습니다.

 

15년간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루살이처럼 무의미하게 살면서 기계의 부품은 점점 낡고 여기저기 고장만 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와이프는 와이프대로 남자아이 둘을 낳으면서 육아를 더욱 힘들어하였고 야근이 많을 때는 육아를 잘 도와주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감정의 골은 깊어져 갔습니다.

 


해외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본사로 복귀하면 지방에서 근무 중인 와이프, 아이들과 또다시 생이별을 하게 되는 상황이었고 와이프는 심각한 우울 증상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해 살아본 적이 있던가 '

 

슬프게도 유년 시절에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거나 극히 단편적인 경험을 제외하고는 나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원치 않는 공대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들어갔고 주변에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기대로 몸이 망가지는 것도 방치하면서 인생을 갈아 넣었습니다.

 

남은 건 잃어버린 15년과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이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펑크 난 타이어를 끼고 고속도로 위를 계속 달리기만 하는 슬픈 질주를 잠깐이라도 멈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타이어가 펑크 난 건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를 절대 멈추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질주를 멈추지 않고 계속 간다면 나 자신이 나에게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아닌 나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6개월간 보지 못한 아이들의 사진을 꺼내보았습니다.

영상통화에서 봤던 것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귀여운 순간이 순식간에 지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선택의 시간은 다가왔고..

 

처음으로 누군가에겐 뻔뻔하고 말도 안 되는 가장 큰 용기를 내어보았습니다.

 

적들을 깨부수고 여인에게 고백할 때만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해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행복해질 용기를 내자'

 

어떤 누구도 돌보지 않는 나 자신을 돌보고 나의 행복을 지켜내는 데에 가장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짙은 안개에 가려 아직도 이 질주의 목적지가 뚜렷이 보이지는 않으나 질주만 하느라 온갖 도로의 먼지와 오염물질로 뒤덮인 차를 차분히 닦고 펑크 난 타이어를 갈아 끼우며 그동안 보지 못한 창밖의 풍경도 바라보며 아이들과 부대끼며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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